1. 서론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세계는 문화적, 정치적, 제도적, 기술의 세계화를 이루고 있다. 그 중에서 경제적 측면에서의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운송기술이나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의해 또는 인위적 장벽이 제거됨에 따라 지역적으로 격리된 시장이 범세계적으로 통합되는 현상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 과정 속에서 국가 간의 무역관계를 다루기 위한 원칙이나 규칙, 규범, 분쟁해결절차 등으로 구성된 국제무역체제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국제무역체제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들이 있는 바, 이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 우선, 국제무역체제의 성립과 발전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본 뒤,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들의 대해서 알아보고 이들을 토대로 판단하도록 한다.
2. 국제무역체제의 성립과 발전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기 직전인 1944년, 연합국 45개국 대표는 미국의 브레튼우즈에서 전후의 세계경제를 부흥시키고 유럽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구체적 협력제체를 논의하였으며, 그 결과 IMF와 IBRD라는 국제기구가 탄생하게 되었다. IMF는 일시적인 국제수지 불균형상태에 처한 구가들을 지원하고, IBRD는 각국의 장기적 경제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그 후 1948년 쿠바의 하바나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서방의 50여 개 국가들은 자유무역의 확대를 위하여 국제무역기구(ITO)의 설립에 관한 하바나헌장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미국의회가 ITO 설립에 대한 비분을 거부하면서 ITO의 설립은 무산되었고, 대신 제네바협상에 참여한 23개국을 가맹국으로 하여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1948년 1월 발효되었다. 그 결과 2차 세계대전 이후 IMF, IBRD, GATT를 중심으로 한 국제경제체제인 브레튼우즈체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GATT는 하나의 협정으로써 국제기구는 아니었지만 1995년 1월 WTO가 출범하기까지 다자간 무역협상을 통해 무역의 확대를 추진할 수 있는 사실상의 국제기구로 활동하였다.
WTO는 우루과이라운드 합의를 통해 창설되었으며, 공식적 목적은 ‘무역이 원활하고 자유로우며 공정하고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WTO는 이런 역할을 중립적으로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무역협정을 집행하고, 무역협상을 논의하는 공간을 제공하며, 무역 분쟁 해결을 돕고, 각 정부의 무역정책을 심의하며, 기술적 자문과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개도국이 무역정책을 수립하는 데 협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WTO의 법적 권한 및 제도적 구조는 GATT보다 광범위하고 구속력 있는 규칙을 갖고 있다.
3.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시각
가. 문제점
국제경제는 크게 국제무역과 국제금융으로 구분되는데 이 중에서 국제무역은 국경을 넘어 재화와 서비스 등이 이동하고 교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재화와 서비스가 이동하는 까닭은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국가별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국제무역을 통해 경제적 후생이 증가하고, 분업이 이뤄짐으로써 부도가 증가한다는 주장이 흔하게 제기되나 무역을 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는 상이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구제무역을 바라보는 대표적 시각으로 중상주의, 자유주의, 급진주의를 들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시각
1) 중상주의
15세기부터 18세기 후반 자유주의적 단계에 이르기까지 서유럽 제국에서 채택한 경제정책과 경제이론으로, 화폐차액론 학설을 중심으로 하고, ‘소비를 줄일 것’을 주장했다. 이 시기의 대표 인물로는 영국의 월림엄 스태퍼드를 꼽을 수 있다. 초기 중상주의자들은 행적적 수단으로 화폐 수출과 상품 수입을 금지시킬 것을 주장했다. 더불어 가급적이면 더 많은 화폐를 저축하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일부 국가는 외국인들에게 한 국가에서 상품을 판매해 얻은 수입 전액으로 반드시 그 나라의 제품을 구매하거나 그 나라에서 다른 용도로 소비할 것을 규정했다. 이러한 중상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이 가해지게 되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면사 생산력은 빠른 속도로 과잉 상태에 직한다. 영구의 면직물 생산량은 1785년의 4,000만 야드에서 1850년에는 무려 50배나 증가한 20억 야드에 이르렀다, 19세기 중엽에는 영국의 면직물 생산량이 다른 모든 국가의 생산량을 합친 것보다 많게 된다. 여기서 이 많은 천과 의류를 생산해 누구에게 판매해야 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에 애덤 스미스는 중상주의 보호무역 정책을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나서게 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영국이 무역 보호주의, 영지 쟁탈 및 독점적 지위유지 등 고유의 방식으로 계속 돈을 벌 가능성이 높으나, 만약 자유무역을 선택한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역설했다. 더불어 영국이 다른 나라를 부유하게 만든다면 그 국가들이 영국산 제품을 더 많이 구매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주장은 중상주의를 배제하고 자유주의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2) 자유주의
자유주의는 15세기 근대 자본가계급이 주축이 되어 이끌었다. 이들은 당시 지배계급에 대해 사회활동을 하는 데 있어 개인의 자유와 이니셔티브 보장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자유주의의 대표적인 내용은 영국의 정치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가 주장했다. 스미스는 여러 개인의 이기적 경제활동이 결과적으로 사회생산력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여러 계급의 이해를 조정하고 번영 속에 자연조화가 성립된다면서 이를 ‘신의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자유시장 원칙 존중, 국가개입 최소 주장으로 무엇보다 자본가들의 자본축적이 자유롭게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1970년대에 케인스주의적 타협에 기초한 국제통화체저인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하면서 신자유주의가 등장하였다. 신자유주의는 대처와 레이건 행정부에서 보듯이 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각종 규제 철폐와 민영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적극적 시장개입을 추구하는 복지국가를 공격의 타깃으로 삼았다. 좌파정당이 추진한 복지국가는 노동 동기를 약화시키고, 저축 및 투자를 감소시키고 생산 위축 초래로 경제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미국과 다국적기업이 줃하여 세계 각국에서 시장개방과 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각종 규제철폐로 나타났다. 신자유주의는 세계화로 더욱 부상하게 되었다.
자유주의의 바탕이 되는 이론은 리카도의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으로 이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대하여 두 가지 상품의 생산에 있어서 모두 비효율적이라고(절대열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상호이익이 되는 무역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두 상푸에서 모두 절대열위에 있는 국가는 절대열위가 보다 작은 상품(이 상품이 이 국가가 비교우위를 가지고 잇는 상품이다)의 생산에 특화하고 수출하며, 절대열위가 더 큰 상품(이 상품이 이 국가가 비교열위에 있는 상품이다)을 수입하게 된다.
3) 급진주의
급진주의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유래한다. 급진주의자들의 지적인 조상을 애덤 스미스나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아닌 바로 칼 마르크스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정치경제학>에서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사회 구성체가 거기에 내재하는 객관적 법칙성으로 인해 몰락하고, 사회주의 질서로 교체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산업화를 겪고 있던 유럽이 생산력과 생산관계 간의 갈등으로 인해 혁명이 발생한다고 예언하였다. 그들은 과학적 공산주의 이론에서 노동자 계급이 자본주의적 착취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투쟁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어떻게 건설해야 하는 가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개인이나 국가가 아닌 계급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정치경제적 본질을 파악하였다.
레닌은 마르크스의 개념에 기반 해 생산과 자본의 집중과 독점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해나가는 것을 제국주의로 설명하였다. 급진주의 이론은 2차 대전 후 제3세계의 경제적 민족주의와 연결되면서 종속이론으로 확대발전하였다. 종속이란 한 나라의 경제가 자주권을 상실하고 그가 속해 있는 다른 나라의 경제의 상태여하에 따라 항상 불리하게 조건지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종속이론은 자본주의체제하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경제관계를 항상 수탈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전자의 경우 발전을 가져오나, 후자의 경우는 저발전을 초래한다고 한다. 또한, 국제관계의 제반 문제를 개인이익이나 국가이익이 아닌 계급이익의 관점에서 조망하며, 남북관계, 즉 선진국과 후진국 혹은 부국과 빈국의 관계에서의 수탈현상에 주목한다.
한편, 월러스틴 등 일부 학자들은 세계체제론을 제시하였다. 월러스틴은 세계를 자본주의라는 구조적 특성을 지닌 하나의 체제라 보고 이는 후진국의 저발전과 착취를 통해 유지된다고 주장한다.
급진주의는 부등가교환론을 주장하면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반박하며, 이를 위한 대한으로 ‘Fair Trade’를 제시하고 있다.
4. 바람직한 국제무역체제
가. 문제점
어떤 국제무역체제가 가장 바람직한가의 문제는 결국 ‘경제발전을 이룩한 선진국들과 아직 경제발전 중인 개발도상국들 간의 관계를 어떻게 보며, 이를 해결 할 것인가?‘ 라는 것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제의 세계화 속에서 WTO로 대표되는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들을 향해 자유주의 무역을 주장하며, ‘공정무역’이라는 이름하에 이를 관철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개발도상국은 ‘자유무역이냐, 아니면 보호무역이냐?’ 라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자국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세계 시장의 기회와 이익도 함게 쟁취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선진국들이 어떻게 경제발전을 이룩했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하 있다.
나. 선진국의 경제발전 과정
1) 중상주의 정책의 고수
중상주의가 대두한 16세기 무렵에는 지리상의 발견이 이루어져 세계시장의 확대에 따라 서유럽 국가들 간에 치열한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지게 되었고,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 등의 국가들은 식민지 쟁탈을 통해 얻은 자국의 이익을 보호․증대하기 위하여 제로섬 게임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보호무역과 중금정책을 추진하는 중상주의 정책을 고수하게 되었다.
2) 자유무역의 전파
식민지 쟁탈을 통해 얻은 막대한 이익을 통해 산업혁명을 이룩한 영국은 당시 세계의 유일한 산업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영국의 산업 능력은 영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국가의 산업 능력을 합친 것과 대략 비슷했다. 그러나 영국은 인구가 적은 나라였다. 따라서 공산품의 판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당시 유럽 주요 국가들은 모두 보호무역의 색채가 짙은 중상주의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에 영국은 한편으로는 유럽 각국에 영국산 공산품을 대거 홍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 세계에 ‘자유무역’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시장을 열기 위해 영국은 먼저 자국의 보호무역을 폐지했다. 이어 다른 나라 제품에 대한 수입제한조치를 철회하는 대가로 상대국 역시 영국 제품에 대한 수입 제한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처럼 영국은 유럽 각 주요국들과 호혜관세 협정을 체결하여 원료 및 공산품에 수입 관세를 낮추고 견직물 수입 금지령을 철폐했다. 1840년대에 다시 상품 수백 종의 수입 관세를 철폐하고 수천 종의 수입관세를 인하했다.
이러한 자유무역 전파를 통해 영국은 자국의 공삼품의 수출량이 세계 공산품 무역의 3분의 2를 차지했을 정도로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영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더욱 더 많은 나라들과의 무역을 원하였고, 이 과정 속에서 무력을 동원하기도 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청과의 아편전쟁이었다.
3) 자유무역의 포기
자유무역을 통해 얻으며 세계 제일의 국가로 부상한 영국은 19~20세기에 어느 나라와도 견줄 수 없는 부침을 겪었다. 세계 경제는 ‘제2차 산업혁명’의 전개와 더불어 천지개벽의 변화를 겪었다. 하늘을 찌르던 영국의 국력이 점차 내리막길을 걷게 되자, 영국은 자신들이 신봉하던 자유무역 정책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 정치․경제 구도의 변화와 각국에서 고조된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세계대전의 발생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4) 자유무역정책의 추진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 과정 속에서 전쟁의 무대가 되었던 유럽이 황폐화되고 미국이 영국을 대신해 세계 경제를 이끌어 나가게 되었다. 이에 미국은 자국의 농산물에 대한 보호를 위한 ‘스무트-할리 관세법’ 으로 대표되는 강한 보호무역을 추진하였고, 이는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등과 함께 미국의 경제성장을 이끌게 되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최대 최고의 경제대국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게 되었고, 얻는 이익은 날마다 증가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브레튼우즈체제를 구축하면서 기존의 입장에서 변화한 자유무역을 추진하게 되었고, 이는 앞서 본 것과 같은 IMF와 IBRD, 그리고 GATT와 WTO의 설립으로 이어지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5) 바람직한 무역체제
(1) 선진국의 경제 성장 과정을 요약해 보면, ① 보호무역을 통한 이익의 획득, ② 자국 내 이익이 극대화 된 경우에, 자유무역의 실시, ③ 경제 위기 시 자유무역의 철폐. ④ 이익의 증가 시 자유무역의 실시의 순으로 계속 순환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이 자유무역을 주장하던 시기에 대해 베이징 사범대학 역사대학원의 궈자홍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시기에 이르러 영국은 보호무역 조치로 자국 산업을 보호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자국 산업을 세계 각지로 자유롭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하면 당시 영국은 경제가 신속히 발전하고 제품이 차고 넘치는 데다가 상품 경쟁력도 대단히 높았다. 이 때문에 다른 국가의 시장 개방이 절실했다. 시장 개방을 자유무역의 폭넓은 보급을 의미한다.”
(2) WTO가 창설되어 자유무역을 권고하고 있는 이 시기에 선진국들은 이미 보호무역을 통해 자국 산업을 성장시킨 상태에 있고, 개발도상국의 경우는 보호무역을 통해 자국 산업을 성장시켜야 되는 상태에 있어 양 자의 입장차가 존재한다.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고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무역만을 주장하는 것은 극히 이기적인 행위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장하준 교수 역시 개도국 시절 강력한 보호주의 정책을 실행했던 선진국들이 지금에 와서 태도가 표변해 개도국들에게 신자유주의적 개방정책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프리드리히 리스크가 사용한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리스크는 당시 영국이 주장한 자유무역주의는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이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벌림으로써 뒷사람이 정상에 오를 수 없도록 하는 것과 똑같은 행태라고 비판했는데, 오늘날에도 이러한 논리가 현실을 제대로 설명해주는데 적합하며 지난 20년 동안 선진국이 주장한 대로 시장개방정책을 편 개도국들이 성장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했고, 많ㅇ느 나라에서 성장이 멈췄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고 한다.
(3) 그렇다면, 바람직한 무역체제를 제시한다면 개발도상국들의 자국산업 보호를 위한 보호무역의 실시가 그 답이 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움이 따른다. WTO로 대표되는 경제세계화 속에서 경제 약소국의 보호무역주의의 주장은 자칫 경제고립의 위기를 자초하는 길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더글러스 어윈은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었다.
【1990년대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오클랜드 만 대교를 수리할 때,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미국산 철강 제품만 사용할 것을 규정했다. 최종적으로 한 미국 업체가 철강 제품 납품 업체로 선정됐다. 그러나, 결국 국산 청갈 제품을 사용하면서 지출이 4억 달러나 초과됐다. 그 부담은 캘리포니아 주 납세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초과 지출된 4억 달러는 원래 고용 증진, GDF 증대의 용도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돈이었다.】
결국, 바람직한 무역체제는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성장을 인정하고, 이를 전제로 자유무역을 개발도상국과 논의하는 형태의 자유무역이라고 생각한다. 즉,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은 출발선상이 완전히 같지 않음을 인정한 상태에서 협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다.
5. 결론
가. 국제무역체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이해관계, 각 국가의 다양한 내부사정, 역사적․지리적 환경 등 여러 가지 문제를 포함한 여러 변수들이 존재한다.
금융 패권을 휘두르며 글로벌 무역전쟁에서 연전연승하던 미국이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입자 무역 협상에서 발언권을 쟁취하려는 수많은 신흥 시장 국가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이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세계에서 마지막 소비국과 수입국 역할을 계속 감당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고, 2010년 3월에는 ‘수출확대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에 중국은 2010년 4월에 발표한 ‘포스트 금융 위기 시대 중국의 대외무역 발전 전략 연구보고서’에서 20020년까지 상품, 서비스 무역의 규모를 각가 2배로 늘린 계획이라고 명시하는 등 너무나도 많은 현실적 변수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는 ‘분명히 인정해야 할 차이’ 가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산업보호를 위해 보호무역의 장벽을 쳤던 것을 인정하고, 이를 고려하여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무역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국제무역체제를 형성해 나가야지, 양 국이 서로 평등하다고 하며, “공정무역”이라는 선진국의 입장에서의 단어 선택을 통해 개발도상국을 압박해 나가는 방식의 자유무역 요구는 불합리하다고 할 것이다.
참고문헌
구종순․박광서․최낙일, 『글로벌시대의 무역개론』, 박영사, 2012.03.02,
홍익표․진시원, 『세계화시대의 정치학』, 오름, 2009.08.27.
CCTV 경제 30분팀, 『무역전쟁』, 랜덤하우스코리아, 2011.10.25.
도미니크 살바토레, 『국제무역론』, 시그마프레스, 2009.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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