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Bernstein의 수정주의적 사회주의
- Eduard Bernstein이 최초로 맑시즘을 본격적이고 체계적으로 수정. 수정주의적 사회주의 이론을 구성
- 궁핍화이론과 산업의 집중화, 첨예한 경제위기에 관한 맑시즘의 예견 공박하는 한편, 폭력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거부하고 사민당에 민주적이고 사회주의적인 개량정당으로 전환 호소.
-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대체하는 대안적 전술은 민주주의의 확대. 사회주의는 다양한 사회영역에서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속에서 점진적으로 실현가능
- 민주주의가 증대된 곳에서는 노동자의 공적 영역에의 참여와 국가와 지자체에 대한 영햑력이 확대되므로 혁명이 불필요
- 비스마르크의 사회주의 탄압법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은 비약적 성장. 사민당은 노동계급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가 다양한 활동. 문맹자들에게 문자를 가르치고, 당이론 학습시키거나, 스포츠나 취미활동 조직 결성.
- 그러나, 사민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자본주의의 임박한 붕괴와 그에 수반되는 정치혁명, 그리고 뒤를 이은 사회주의의 도래(붕괴론). ‘공산당 선언’과 ‘에어푸르트 강령’에 제시됨. 칼 카우츠키가 정통파의 지위 차지(후에 베른슈타인 입장 수용)
- 베른슈타인은 이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제기. ① 노동계급의 실질임금증가로 향상수준 향상, ② 중간계급인 소상인이나 중소자본가도 증가하고 자영농도 증가, ③ 자본가도 줄어들지 않고 증가, 자본주의가 위기를 조절할 수 있게 됨. 붕괴를 전제로 한 혁명적 이행전술은 폐기되어야 하고 더 현실적인 수단(합법적 수단인 일상투쟁, 경제투쟁, 의회전술)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 로자 룩셈부르크는 <개량이냐 혁명이냐>에서 베른슈타인을 논반. 첫째, 베른슈타인은 카르텔, 트러스트 같은 독점자본들의 담합, 신용제도, 교통과 정보망의 발달이자본주의를 붕괴하지 않게 한다고 주장.
← 담합은 경쟁으로 돌아가고 신용제도는 투기 초래. 자본주의가 아닌 영역을 자본주의로 편입시키는 운동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자본주의가 결국 붕괴
- 둘째, 베른슈타인은 현존 체제 내에서 합법적 수단인 일상투쟁, 경제투쟁, 의회전술을통해 사회주의 실현가능 주장(혁명을 거부)
← 혁명에 대한 자의적이고 협소한 정의. 혁명이란 기존체제의 전복이자 단절이며, 입헌적 질서 내에서 개량으로는 결코 현존 사회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고 반박. 베른슈타인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내에 사회주의적 요소가 일부 가미된 사회를 제시할 뿐임
- 잉여가치 개념을 부정하고, 계급을 단지 소득수준의 차이로 이해하며, 분배에서의 우연적 불평등 개선만을 주장(라살레와 동일). 그러나 생산과정에서 착취가 발생한다면 생산양식을 다른 생산양식으로 바꿔야 됨. 역사의 단절이 필요
※ 페이비언 협회는 급진적 지식인들에 의해 1884년 런던에서 창설되었다. 페이비언협회는 자유무역에 반대했고, 토지의 국유화를 주장했다. 1900년 영국 노동당의 창립에 수많은 회원이 참여했고, 협회의 강령이 노동당 강령의 모태가 되었다. 페이비언 협회는 사회민주주의 정책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영국 노동당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2.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
-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적 제도(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통해 사회주의로 진전을 이루고자 하며, 순수한 노동자 계급만의 통일을 넘어선 광범위한 계급동맹을 추구
- 이론적 대부는 베른슈타인, 라셀라의 영향을 받은 그는 자본주의 붕괴 필연론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에 반기. 민주적 제도장치의 틀 내에서는 정진적인 운동을 통한 사회주의 실현 주장
-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부르주아 a니주주의를 수용하는 입장에서부터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에서 민주주의를 활용할 수 있다고 보는 전략적, 도국적 관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입장 존재.
- Adam Przeworski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보증하기 위해 물질적 보상이주어져야 하고, 이를 통해 체제의 안정성이 증가 지적. 국가의 복지지출은 노동계급과 일반 국민이 체제에 대한 순응성을 함양하는 ‘동의의 물질적 기초’로 기능. 국가,자본,노동간의 화해적 정치구조
※ Sheri Berman은 자신의 저서에서 자본주의의 형성으로 시장의 요구사항들이 공동체의 삶과 정치권력의 한계를 결정하게 되면서, 국가,시장,사회 간의 전통적 관계가 단절되었다고 지적한다. 버먼은 전자본주의 사회들에게서는 전통적 공동체들의 제도,규범,선호가 시장의 범위와 작도을 통제하면서 시장이 정치에 종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사적 이익이 공적 이익보다 우선시 되었고, 시민들 간의 유대관계는 일시적이고 변하기 쉬운 교환관계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20세기에 들어와 정치의 우선성과 공동체주의에 대한 믿음, 즉 경제적 힘이 아닌 정치적 힘이 역사의 동력이 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확신, 그리고 사회의 ‘욕구’와 ‘행복’은 보호되고, 배양되어야 한다는 확신 위에 세워진 이데올로기인 사회민주주의에 의해 복구되었다고 지적한다.
- 복지국가는사회적 시민권의 하나로써 국가가 국민들에게 일정 수준이상의 삶의 질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국가. 19세기 말에 서유럽에서 처음으로 출현
- 국민들에게 일정한 보호를 보장하기 위해 복지에 관한 최소한의 전국적 기준을 정하고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사회적 연대의 기능을 독점.
- 에스핑앤더슨은 복지국가를 국가의 성격,계급관계, 대외개방의 정도, 그리고 ‘탈상품화’의 수준 등과 같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정의해야 한다고 지적
- 복지국가의 확산은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자본가와 노동계급(정당들)이 뉴딜, 사회계약, 역사적 타협이라 불린 사회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가능했음
- 빈민과 노동자들만 아니라, 전체 시민들에게 보호를 제공하고 필요할 때마다 그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복지국가는 경우에 따라 권력집중이 증대되고 사회적 계획화가 진행
※ 덴마트 출신의 사회학자인 에스핑앤더슨은 복지국가와 비교사회정책에 관한 세계적인 학자이다. 1990년 발간된 <복지 자본주의의 세가지 세계>에서 에스핑앤더슨은 탈상품화, 계층화, 국가와 시장이라는 세 기준을 사용하여 복지국가를 자유주의, 보수주의적 조합주의, 사회민주주의의 세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자유주의는 탈상품화가 저수준이며 계층구조에서 이중구조를 보이고 있는 모델이고(미국, 캐나다 등) 보수주의적 조합주의는 탈상품화는 어느 정도 실현하였으나, 사회보장프로그램이 사회계층을 반영하는 구조를 갖고 있는 모델이며(독일, 오스트리아 등) 사회민주주의는 노동운동이 강한 주도권 하에 탈상품화가 진행되어 계층성이 약한 모델이라고 지적한다(스칸디나비아 국가들)
3. 노르딕 복지국가 모델의 특징(Mary Hilson)
(1) 복지급여를 대부분 공공부문에서 제공
(2) 복지급여 제공은 포괄적이고 보편적이다. → 강력한 재분배와 높은 수준의 사회평등달성
(3) 고용과 연계된 기여보다는 주로 일반 조세를 통해 재정을 조달
(4) 복지를 ‘잔여적 복지국가’처럼 가난한 시민만을 대상으로 한 안전망에 국한시키지 않음
(5) 맞벌이로 생계를 해결하는 가족모델의 발전을 촉진시킴
4. 스웨덴의 사례
- 북유러 사회민주주의를 선도한 국가는 스웨덴. 복지국가의 정책설계자는 사민당의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페르 알빈 한손, 고스타 렌, 루돌프 마이드너 등
- 비그포르스는 1919년 이미 ‘예테보리 강령’을 작성:
“노동계급 생활수준의 전반적 향상 그리고 이에 따라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부의 배분이 좀 더 평등하게 이루어 지는 것”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 통한 일자리 보장. 노동시간 단축, 전국 단위의 의료보험, 평등한 교육기회, 압도적으로 누진적인 사옥세와 소득세 등을 제시
- 1928년 선거에서 한손은 국가가 모든 국민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집이 되어야 한다는 ‘국민의 집’를 내걸음. 1932년부터 17년동안 재무부장관으로 재직했던 비그포르스는 ‘나라살림이 계획’이라는 경제모델을 제시하고 선별적 경제정책,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포괄적인 보편적 복지정책을 추진
- 이들 노선은 보편적 복지국가 정책과 결합되어 노동자 가족의 고용과 생계를 안정시켰으며, 자본가 계급과의 협조를 통해 스웨덴이 산업고도화 생산성 향을 이루어내는데 크게 기여
※ 사민당 정권 하에서 노동과 자본 측의 대표들이 함께하는 수많은 위원회가 만들어져 직접 대결보다는 논쟁과 타협을 통해 이해대립이 조정되었고 1938년 유명한 살트세바덴 노사대타협이 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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