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 Isaiah Berlin은 “two concepts of liberty"에서 자유를 소극적 개념과 적극적 개념으로 구분. 소극적 자유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방해받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어떤 영역’을 의미. 적극적 자유는 ‘어떤 사람이 자신에 대해 주인이 되는것’
- 전자는 개인이 자기의 욕수를 추구하는 과정에게 국가의 통제, 강압, 제약이 부재하거나 최소한에 그칠 것을 요구하는데(고전적 자유주의) 반해, 후자는 개인의 자아실현에 장애가 되는 사회구조나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 간섭을 주장(수정 자유주의, 사회주의)
- 소극적 자유는 국내 질서와 개인의 안전을 유지하는 최소국가를 지지하고 자유방임 자본주의에 공감. 선택의 자유오 프라이버시의 자유로 연결
-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구분하는 것은 복잡하고 때로 모호. 둘 사이의 차이는 단지 언어의 혼란에 불과. G.C.MacCallum은 ‘X는 Z를 하거나 Z가 되는 데에 Y로부터 자유롭다’는 가치중립적인 자유 개념을 제안
- 19세기 후반 자본주의 체제의 병폐가 나타나면서 소극적 자유에 대한 비판들이 개진됨. 그 이론적 배경은 J.S.Mill로 소급. 해악원칙 주장. 소극적 자유동의하는 한편 개체성의 성취를 격려하는 것이 자유의 목적이라며 적극적 자유 주장.
- 자유에 대한 적극적 개념을 내세운 자유주의자는 Tomas Hill Green. 자유를 ‘그들 자신을 위해서 가장 많은 것과 가장 좋은 것을 만드는 능력으로 정의. 행동을 할 효과적인 힘을 갖고 있고 각 개인들이 이용할 기회로 관심.
- 적극적 자유개념은 수정 자유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사회복지를 위한 정당성을 제공. 복지국가는 개인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사회악들로부터 자유롭게 함으로써 자유를 확대.
- 막스는 진정한 자유를 ‘그 자신을 위해서 인간의 잠재력을 발전시키는 것’으로 기술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창조적인 노동의 경험을 통해서만 실현 주장. 자본주의 노동자들은 소외 계급으로 고통
2. 케인스와 자유주의의 진화
- 케인스는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에서 고전파 경제학을 비판. 완전고용을 실현, 유지하려면 자유방임주의가 아닌 유효수요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
- 세계공황은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발생. 국가가 완전고용을 목표로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줌으로써 노동자들의 소득을 증대시키고 이는 다시 소비를 늘리고 자본가의 투자를 증대시켜 경제를 성장시킴
- 1929년 대공황을 극복하는 이론적 처방이 됨. 케인스와 대안은 ‘수정자본주의’,‘혼합경제’,‘복지국가’의 이론적 기반이 됨. 2차 대전 후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은 케인스주의를 수용해 복지국가의 황금기를 구가함
- 1970년까지 존속했던 국제통화체제/브레튼우즈체제는 케인스주의적 타협에 기초
3. 사회적 시장경제
- alferd muller-armack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연방정부 초대 경제장관이었던 ludwig erhart가 정치적으로 실행. 이익의 실현을 위한 경쟁을 사회 공동의 질서 원칙으로 간주하는 walter eucken 이 이끄는 freiburd학파의 신자유주의 이론 및 정책에서 자극. 다양한 사상,조류와 결합
- 주임사상은 “시장경제의 기초 위에서 자유로운 창의성과 바로 시장경제의 성과들을 통해 확보된 사회적 진보를 결합시키는 것”임. 주요한 내용은
① 자유경쟁질서의 확립을 통한 최대한의 경제발전. 시장원리에 입각한 성장정책. 국가간섭의 제한. 시장원리에 입각한 완전 고용
② 금융질서의 확립. 특히, 독립적인 중앙은해에 의한 물가안정
③ 경제성장을 통해 사회보장을 실시하고, 사회정의와 사회발전 달성
- 사회적 시장경제는 성과경쟁과 결합된 시장이 기본적인 질서 및 조정원리. 통화정책, 재정정책, 대외경제정책을 통한 거시적 경기조정. 국가는 능동적인 사회정책을 통해 사회정의와 사회보장
- 국가가 성과경쟁의 관철과 사회적 목표들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인 경제 및 사회정책의 담당자 역할하는데서 고전적 자유주의와 차이
- erhart는 1948년 화폐개혁을 통해 생산과 분배에서 가격 및 수량 통제가 철폐되고 자유로운 시장가격 형성케 함. 이후 1949년 기본법에 내용 포함시키고, 단체교섭법, 경영조직법, 독일연방은행법, 반경쟁제한법 등 경제질서를 위한 제도와 법률 제정
- 국가는 효과적 질서틀을 조성하고, 공공재의 생산자 겸 재원조달자 임무는 제한되어야 하나 1970년대 이후에는 사회국가가 확대
※“인간과 사물의 본성에 부합되는 질서는 유효한 경쟁과 가격형성이 가능한 자유시장경제체제이어야 한다.자유시장경제는 자생식물이 아닌 재배식물이다. 꽃이 피기 위해서는 책임있는 손에 의한 배려와 손질이 필요하다. 경제의 전체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질서 사이, 모둔 부분질서와 경제 전체의 질서 사이, 경제질서와 경제외의 사회, 정치, 정신질서 사이는 불가분의 상호 의존관계가 존재한다.”
4.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과 민족주의
- 독일에서는 1806년 이후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으며 민족주의가 발전. burschenschaft 운동이 일어났고, fichte, stein 등이 앞장서서 독일인들에게 민족적 각성을 촉구
- 이 당시 독일은 정치적 통합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독일어와 문화가 토대가 된 문화적 민족주의에 그침. 자유주의 운동이 실패로 끝난 후 보수적인 현실정치가인 비스마르크가 전쟁과 외교를 통해 독일을 통일
- 이탈리아는 나폴레옹 침략으로 많은 고통을 받음. 많은 사람들이 대륙봉쇄령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 많은 병사들의 징집, 이탈리아 예술품의 파리 반출 등에 분개
- 시인들을 필두로 지식인들과 군사엘리트들이 이탈리아의 통일과 독립을 내세움. 이탈리아의 자유, 통일, 독립을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주의자이자 문화적 민족주의가 risorgimento. 1861년 이탈리아 통일로 이어짐
5. 민족주의의 정의
-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신이 속한 씨족, 촌락, 도시, 직업, 신분, 지방, 왕조, 제국, 종교 등에 일체감을 느끼면서 자신들의 충성심을 과시해 옴. 다양한 일체감과 충성심은 서로 충돌하거나 공존
- 민족주의는 개인이 민족에 최고의 충성을 바쳐야 한다고 믿는 교리. 민족의 자율성과 정체성과 통일성을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이데올로기이자 운동으로 존재(광의의 민족주의)
- 이 주장은 다음 세가지 가정에 기초 : ① 세계는 구별되는 특수한 개성을 지닌 민족들로 구성, ② 민족의 이해관계와 가치는 다른 것들의 이해관계와 가치에 우선, ③ 민족은 가능한 한 독립적이어야만 하며, 이를 위해 정치적 주권을 획득할 필요
- 민족주의의 이데올로기와 운동은 구체적으로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가져야 한다는 정치적 신조를 표방하고 이를 실펀에 옮기려 함
- 따라서 민족주의란 e.gellner 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차적으로 정치적 단위와 민족적 단위가 일치해야 핟나고 주장하는 정치원리”임. e.hobsbawm도 동일
- m.hechter 역시 민족주의는 “무엇보다 정치적”이라면서 이를 “민족의 경계들을 통치구조 단위의 경계들과 일치시키도록 고안된 집단행위”로 규정(협의의 민족주의)
6. A.Smith의 민족주의 정의
- 민족주의는 실제적 민족 또는 잠재적 민족을 구성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포괄하는 하나의 인구지단을 위해 자율성, 통일성, 정체성을 확보하고 유지하려는 이데올로기적 운동
- 자율성은 민족주의가 민족적 자결과 진정한 민족적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집합적 투쟁 추구 의미
- 통일성은 민족주의가 영토적 통일 그리고 통일된 영토 안으로 민족구성원들을 집중시키는 것, 나아가 사회적 통합과 유대추구
- 정체적은 민족주의가 모든 구성원들에게 상호적 의미들을 부여할 것을 추구. 민족적 동질화를 가능케함.
7. nation의 어원
- nation의 어원은 “출생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nascor이지만 고대 로마에서는 natio의 형태로 다양한 외국인을 지칭
- 중세에는 파리대학이나 라이프치히 대학 등에서 학생등을 출신 지역 언어별로 natio로 분류해 불렀음
- 지금처럼 민족국가의 근거를 이루는 자연적, 문화적 유대읫 아징으로 nation이 사용된 시기는 근대
8. 민족이란 무엇인가?
- 민족은 ‘우리’라는 공통제의 감정, 즉 사람들이 집단 속에서 공유하는 공통의 정체성에 초점
- 문제는 어떤 요인들이 공통된 정체성과 공동체라는 감정을 만드는가 하는 점임
- 일반적으로 민족을 규정하는 공통된 속성들로는 인종적 동일성, 공통의 역사, 언어 그리고 문화 등이 포함
- 이 범주들은 고정적이거나 불변적이지 않음 : “희미하고 유동적이며 모호한 이 속성들은 마치 항해자들이 구름을 여행의 방향지표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의미”(e.hobsbawm)
- 민족의 정치는 둘로 구분 가능 : 객관적인 정의는 민족을 구성하는 혈통, 언어, 관습, 종교, 영토 등의 단일하거나 복합적인 기준들을 제시
- 반면에 민족에 대한 주관적 정의는 민족성원들의 집단적이거나 개인적인 소속감과 소속의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
- 대표적으로 e,renan은 민족을 “매일매일의 인민투표”라면서 영속하는 것이 아닌 그 구성원들에 의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확인받아야 하는 생성체라고 함
- 객관적 기준들은 대단히 모호하고 유동적이어서 민족을 규정하는 토대일 뿐 민족자체가 되지 못함. 주관적 정의는 설명해야 할 것을 단순히 전체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어반복의 맹점 → 뫼비우스의 띠
9. 독일과 이탈리아 통일 이후의 민족주의
- 통일로 축조된 독일 민족국가가 불완전한 것이었고, 이탈리아 통합은 불구의 통일 ← 프로이센과 피에몬테 왕국의 확대와 팽창
- 독일은 소수민족들과 문화적 소수딥단 존재. 이들을 ‘제국의 적’으로 간주하고 사회주의자 탄압과 ‘문화투쟁’ 추진. 대외적으로는 게르만 민족만을 위한 lebensraum 확충 명분으로 제국 건설
- 이탈리아는 고질적인 ‘남북문제’ 존재. 농민반란이 발생하고 왕정지지자들과 급진주의자들이 준동. 폭력을 동원하고 ‘수동적 혁명’을 진행시키
- 양국에서 ‘비민족적’ 혹은 ‘반민족적’으로 간주된 내부의 소수집단들을 ‘타자’ 혹은 ‘내부 식민지’로 분류하고 주변화하며 배제
※ 안토니오 그람시
- 그람시는 20세기의 가장 독창적이 맑스주의 이론가이자 실천가.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대항해 투쟁하다 체포
- 1926년부터 사망하기 직저인 1935년까지 감옥에서 3000여장에 이르는 방대한 수고 집필. 시민사회와 헤게모니, 남부의와 문화이론 정리.
- 그람시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통일을 ‘수동적 혁명’으로 규정. 이는 대중의 요구를 조금씩 들어주되 댖ㅇ의 실질적인 지배력을 확대함이 없이 대중을 체제에 통합시키는 것을 의미
10. 사회진화론과 배타적 민족주의
-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생물종이 자연선택의 매커니즘에 따라 진화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이고 포괄적으로 밝힘. 진화론은 종교적 신념에 기반했던 당시 사회에 큰 충격. 자연과학은 물론,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새로운 시각과 이론적 틀 제공
- 진화론은 빅토리아 시대의 자본주의 및 자유주의자들이 신봉했던 발전의 맥락과 부합. 부르주아들은 다양한 측면을 지닌 진화론 중에서 경쟁논리를 자본축적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역적시킴. 사회주의자들도 유물론적 세계관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수용
- 특히, 스펜서는 사회진화론 주장. 이는 진화는 종국적 목표를 향해 진행되며 그 목표에 도달한(혹은 근접해 있는) 개체 혹은 집단이 그렇지 못한 이들에 비해 우월하다는 관념. 적자생존, 나아가 양육강식의 논리로 연결
- 사회진화론은 영국보다 미국에서 특히 각광 : 카네기(적자생존 보장 경쟁은 최고의 경주), 록펠러(적자생존은 자연과 신의 섭리), 19세기 말 동북아에서 위기 극복 논리로 수용. 유럽 제국주의와 나치즘의 정당화에 이용
11.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 20세기 초에 출현한 파시즘은 개인의 자유와 민족의 독립을 통합적으로 사고하려 한 19세기의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와는 달리 민족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간주해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동체의 조화를 강조
- 반자유주의적이고 반사회주의적 민족주의가 파시즘. 파시즘은 개인주의, 합리주의, 자유주의, 보수주의, 공산주의에 반대. ‘파시즘이 부정하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더욱 정확하게 정의 가능
- 그러나 파시즘에는 다양한 경향이 혼재. 모호하고 남용된데서 파시즘을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려움. 그럼에도 파시즘은 21세기에도 실체를 가진 정치세력 또는 정권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존재
※ “독일에서 지난 세기에 철학자들과 정치인들이 끊임없이 광신적인 이론을 주장했다. 여기에 의도적으로 왜곡된 생물학적 이론이 덧붙여졌다..이런 집단적인 광기, 이런 일탈의 요인들 대부분을 히틀러의 성격, 독일 국민과 그의 깊이 있는 상호작용에서 기인한 것이었다...파시즘은 죽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가면을 쓰고 모습을 숨기고 있었을 뿐이다. 파시즘은 새옷을 입고 다시 나타나기 위해 변신을 꾀하고 있다.”
※ 파시즘은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tsn수성의 숭배를 두르러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양태이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정당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 법적인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다.
12. 민족주의에서 파시즘으로
- 1차대전 후 공동체의 쇠락에 대한 두려움에서 민족의 갱생을 부르짖는 반자유주의적인 대중적 민족주의 정치가 대두
- 1919년 3월 23일 밀라노의 산 세폴크로 광장에서 무솔리니와 190여명의 파시스트들이 훗날 ‘파시스트민족당(PNF)’의 전신인 ‘이탈리아전투단’을 결성. 이질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파시스트들은 이탈리아의 민족적 가치와 영광을 강조
- 파시스트들은 민족을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이상에 맞게 훈육하고 창조할 수 있다고 봄. 이들에게 민족은 주체의 의지와 구성을 강조하는 주관적 민족
- 유산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전후 분출된 전투적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적 선동에 직면. 반볼셰비즘을 내세운 파시스트들과 연합. 사회주의자들은 현장노동자들과 유리된 채 내부분열
- 1922년 10월 파시스트들은 ‘로마진군’을 통해 권력을 장악. 지하조직 단속하고 파업금지하는 등 법률적 강제를 행하고, 각종 대중조직을 만들고 매체를 동원해 지도자신화를 체계적으로 유포
- 1차대전에 패망한 독일에서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입각한 바이마르 공화국 출범. 그러나 허약하고 불안정한 정부가 이끄는 의회민주주의는 취약성 노정
- 높은 실업률과 광벅위한 빈곤으로 신음하던 대중들은 패전국민의 굴욕감을 자극하고 위대한 독일의 미래를 약속하는 나치당(국민사회주의독일노동당NSDAP)을 지지 →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의 민족감정을 정확하게 건드리며 대중의 추종을 끌어냈다!
- 돌격대(SA)를 앞세운 나치당은 1932년 선거에서 원내1당이 됨. 수상으로 임명된 히틀러는 보수동맹을 줄세우고 국가기관과 언론을 완전하게 장악. 긴급명령으로 시민들의 정치권리를 유보하고 노조를 해체시켰으며 사민당 등 정당들을 해산, 일당국가 건설
- 나치즘은 어느 정도 제한된 다윈주의가 지속된 이탈리아 파시즘과 달리 모든 제도, 사상, 조직들을 획일화 시킴. 당 지도부와 산업, 은행자본가, 관료 및 군부 간 전통적인 엘리트 동맹, 대중들의 불안을 조작하는 이데올로기 사용하고 호전적이고 팽창적인 정책 추구
13. 하나의 유럽을 향하여
- 극단적 민족주의인 파시즘이 초래한 세계대전으로 유럽은 파괴되고 세계사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됨
- 전후에 평화와 번영을 위해 민족주의를 억제하고 국가들 간의 분쟁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통합을 본격 추진
- 서유럽 전역에 걸치 본격적인 통합논의는 장 모네의 아이디어에 기초해 로버트 슈만이 시작. 1951년 4월 파리에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출범. 이후 유럽경제공동체(EC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 유럽공동체(EC)를 거쳐 1993년 유럽연합(EU)를 출범시킴
- 유럽통합의 심화과정에서 기존의 종족적, 문화적 논리가 아닌 공동의 시민권에 기반한 유럽 데모스 형성. 이는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민주주의 공간을 생성하고 확장할 수 있는 기회 제공
- 그러나 최근 유럽(특히 주변부)에서는 경제적 위기를 빌미로 자민족중심주의에 경도된 극우세력이 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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